01AUG2019 펜시브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음이 쿵. 내려앉는 일이 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난 날들이 무더운 여름날의 뜨거운 공기로 훅 하고 불어오는 그런 순간.
팔월의 첫째날, 엄마 언니와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정동길에서 점심을 먹고 미술관으로 찬찬히 걸어가며 길가에 있는 카페의 간판을, 오래된 나무를 들여다 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들어 온 카페. 아직 이자리에 있었구나. 가만히 세어보니 벌써 칠년이 흘러버린 오래 전 그날에. 이 계절의 이 장소에서 나는 너와 마주앉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빙수를 먹고 있었다. 아마도 무슨 기념일이었을테고, 그곳에서 나는 이후로도 오래도록 니가 좋아했던 너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밝게 웃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속 조명이 예뻤고 너의 미소가 따뜻했다. 아직 내 기억속에도 사진처럼 남아있는 장면이 이제는 떠오르면 아픈 기억이 되어 버렸네. 지워져라. 

어떤 말들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도 너의 말들은 이제 많이 지운것 같다. 생각하지 않으면 희미해지겠지. 그런데 불쑥불쑥 떠오르는 장면과 분위기와 공기가 남아있다. 최면같은 걸로 끄집어내지는 무의식의 영역에 저장된 것들일까? 잠깐 눈 감았다 뜨면 내가 그때의 나일것만 같은데,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많이 살아왔다. 

서른한살의 여름이다. 
얀센 입사 동기들과는 입사 칠주년을 자축하는 저녁을 먹었다. 그때는 어렸고, 여전히 시니컬했지만 그래도 드러내지 않지만 숨겨놓은 일종의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 이정도면 나쁘지 않지, 계속 걷다보면 대단치는 않더라도 그래도 뭐라도 있을 줄 알았다. 
서른 한살 여름의 지금, 나는 여전히 모든게 두렵고 막막하다.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게다가 늙고 있다는게 너무 서럽고 억울하다. 일은 하루하루 getting by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다. 칠년차쯤 되면 업계에 의견을 정진하고 민원 보완에 대한 혜안이 생기고 식약처에 전화하는 일이 긴장되지 않을 줄 알았다. 어느것도 아니었다. 이쯤 되면 여느 삼십대 직장인처럼 나름 꾸며진 나만의 집에서 퇴근후엔 스스로 마트에서 장보며, 남자친구와 여름휴가를 다녀올 줄 알았는데. 이년 남짓한 시간동안 만난 두번째 사람과는 늘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사실 아직도 생각하면 힘들다. 만난지 두달쯤 된 세번째 사람은 다정하다. 나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내가 마음 아픈걸 마음 아파할 사람을 바랬는데 음 그런데 막상 마음이 참 어렵네. 

두 번의 지난 연애로 나는 같이 사진 찍는걸 어려워 한다. 가끔 이러다 행여 누군가와 결혼하게 되면 결혼식장에 걸어놓을 연애사진 한장 없게 되는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사진과 그리고 사진처럼 선명해질 기억을 지워야 하는 순간이 오는게 너무 두려워서, 애초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슥 지나가려는, 제일 바보같은 서른 한살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덧글

  • 살벌한 눈의여왕 2019/08/19 10:24 # 답글

    안녕하세요.
    님의 7년 전이 지금의 저 같아요.
    써놓으신 숨겨놓은 일종의 기대감은 어떤걸 말하는 걸까요?
    사무치게 아프면서도 왠지 모를 위로가 되는 글이에요..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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